뼛속까지 군인인 장군에 대한 저주


조선의 왕 선조는 흥분이 가시지 않고 있었다. 그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핏대를 세웠다.
이순신을 용서할 수는 없소. 그를 국문(鞠問)할 것이오.
헌부의 주청을 받았으며 원균장군의 장계도 도착했소.   그는 마땅히 죽어야하오.
선조의 말에  이순신을 고깝게 여기는 대신들도 맞장구쳤다. 마침내 2월 6일 선조는 이순신 체포령을 내렸다.
그런 줄도 모르고  이순신은 2월 10일 전선을 이끌고 부산포의 왜군을 무찌른후 한산도 본영으로 귀환하던 중
선조가 보낸 선전관에게 체포되고, 3월 4일 한양으로 끌려와 감옥에 갇혔다.
결과적으로 왜장 고니시는 조선 조정의 내분을 부추겨 가토보다 더 두렵고 미운 이순신을 손쉽게 제거하게 된다. 
(‘선조실록'에서)  


북한이 가장 두려워했고  저주했던  남한의 장군은  누구였던가?
연평도 포격직후 취임한  김관진 장관은 단 한번도 북한의 위협에 물러서지 않았다.
장관은 취임초  지휘서신에 "원수를 무찌른다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 라고 하면서
북한이 도발해오면 "쏠까요 말까요? 라고  묻지 않고, 도발시 즉각 응징한다 "라는  3대응징 방침,
즉 ‘도발 원점타격 ’   ‘ 적 지휘부공격’   ‘선조치 후보고’를 평시 훈련에서 강조하면서 시행했다.
정밀한 군사력으로 뒷받침 된 아덴만 작전의 성공,  서해상에서 한국 해군의 확고한 대처 등.
2015년 목함지뢰 사건으로 우리 병사 두 명의 다리를 잘라야 했을 때 김관진은 청와대 안보실장이었다.
대치상태에서 북한군이 불을 뿜는 순간 10배 이상의 한국군 응징화력이 작동했다.
이에 북은  꼬리를 내리고 서면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김장관은  "북한이 도발하면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하면서, 이를 위한 준비를 강조했왔다.
에에따라 북한은  김장관의 행동에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이면서  미워하고 저주했다.
심지어는 북한군의 사격훈련 타켓에 까지  김장관의 얼굴로 만들어 놓고 사격시키기 까지 하였습니다.   
북한이 암살단을 보내겠다고 협박까지 했지만 김장관의 태도는 더욱 강경하였습니다.
이와같은 태도로 이명박정권, 박근혜정권에 이르기까지  안보 책임자로서 남한의 안보를 굳건히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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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같이 "뼛속까지 군인"이라던  김관진장관이
문제인정권이 들어선 이후로  수차에 걸친  검찰수사를 받고  드디어 구속수감되게 되었다.
죄명은 "싸이버 사령부를 통한 댓글공작의 지시 (정치관여.직권남용)"
수차에 걸친 "증거 불충분 및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등으로  구속되지 않는가  했으나
집요하고 끈질긴 검찰의 수사로  다시 구속되어,  최고형량인 7년을 구형되었으며
판결은   오는 21일  하게된다..


김장군은 구속되면서 이렇게  진술하였다 한다.
"검사에게 명예가 있다면, 장군에게는  장군의 명예가 있다.
 장군의 명예는 사적인 것이 아니라  목숨으로 국민을 보호하는  군의 양심이다.
 저는 47년간 국민을 지키는 일을  하늘이 준 천직으로 알고 살아왔다.
 정권을 위해 일하지 않았다.   강한 군대를 만드는 것만이 저의 양심이었다”
 만약 잘못이 있다면, 그것은 나의  잘못이며  부하들에게는 잘못이 없다. 
 모든 것은 내가 짋어지고 가겠다,  부하들의 선처를부탁드린다”라고  끝났다 한다..
자나깨나 대북 억제력만 생각하던  장군이 국내 선거판에나 기웃거린
타락한 정치군인으로 둔갑한 것이다.
 
이같이  김장군이  구속되는 과정을 보면 
이순신장군이  23전 23승의 전투에서 승리를 가두면서   그  모든 공을  부하에게 돌리고,
장군 자신은  선조에게  미움을 받아  형벌을 받게되는 형국과  비슷하다. 
김장관의 국가의 안보를  생각하는 마음이나, 부하들을  먼져 생각하는 마음은
어떤 가식이나 꾸밈이 없이  진실된 마음에서 나온 것임을 
초급장교시절  동료로서  같은 부대에서 근무했던 필자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임진왜란시 이순신장군의 투옥이  왜군의 끈질긴 저주와 공작에 의헤서 그랬던 것 처럼
혹시, 김관진장군의 구속이 북의 끈질긴 저주와  지령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