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육영수 여사님 추모]

 육영수 여사님과 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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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병. 일명 나병, 문둥병.

한 때 무조건 전염된다는 잘못된 인식으로

 한센병 환자들은 사람 이하의 취급을 받았다.

가족으로부터 버림 받고, 동네에서

쫓겨났다.

 

조선시대 때만 해도 그들은

 유랑, 걸식으로 생명을 이어가다

외롭게 죽어야 했다.

 

근대에 들어 그들은

 사람이 살지 않는 곳으로 격리되어

버려진 삶을 살았다.

 

최근에도

사람들은 그들 주변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누구도

 찾지 않는 나환자 촌에....

19654. 9곳의 나병원에 꽃씨

 9상자가 전달되었다.

 

비록 불우한 환경에

살지만 꽃을 가꾸는 아름다운 마음을

 길러 주고자 꽃씨 9상자가 9곳의

나병원에 전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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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1970.01.02 강원도

 나환자 정착촌 경천농원 방문,

 

1970.10.02

음성 나환자촌의 미감아 아동 청와대 초청.

청와대 뜰에서 다과를 베풀고.

 

1971.01.31

대한나협회 회장에게 금일봉 하사

 (해태 35천장을 구입, 재일동포

나환자 586 명에게 전달)

 

1971.05.

대한나협회 기관지 '새빛'지 후원

(전국 87개 정착촌/병원에 '새빛'지를 보내

 나환자들의 치료와 사회복귀 격려)

 

1971.05.

 나환자 정착촌 상지원(전북 익산),

 애양원(전남 여수), 삼애원(경북김천)

각각 TV 1대씩 하사.

 

1971.07.22

 나환자 정착촌 광명원에

라디오와 서적 기증.

 

1971.07.23

영애(박근혜)

 함께 성나자로원에

 건립된 '정결의 집' 준공식 참석.

 

'정결의 집'은 영부인의

 하사금 180만원으로 건립, 성 나자로

원생 및 나음성환자들이 목욕탕과

이발소를 이용.

 

1971.07.26

나환자 정착촌 소혜원에

 텔레비젼 1대 기증.

........

 

그러나 이런 일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 소용도 없었다.

 

어떤 병도 살아야겠다는

 환자의 강한 의지가 있어야 고칠 수 있고,

어떤 가난도 스스로 잘 살겠다는 자립, 자활 의지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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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나라 한국.

이들을 평생 먹여 살릴

돈도 없었다.

 

... 어쩌랴...

어떻게 하면 이들은 진짜

도울 수 있을까.

 

육영수 여사는

고민에 잠겼다.이들 스스로 일하고,

돈 벌고, 병도 고치고, 행복한

삶을 살게 해야 한다.

 

단순한 희사나 기부는

 나환자들의 의존심만 키워 가난을

더욱 심화시키고 질병은 더욱

깊어갈 것이다.

........

 

돼지를 키우자.

돼지는 빨리 크고, 새끼를

 많이 낳는다.

 

'양지회'를 만들었다.

 

1971.12.05 전국 나환자

정착촌 37개소 선정, 종돈 하사.

 경천농원 방문, 씨돼지 전달.

 

1971.12.17

현애원을 방문,

위문품 전달. 격려 하사품

: 종돈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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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영수 여사,

 

한센병

환자들에게 한 연설....

군더더기가 없다. 수식어도 없다.

마음에서 우러 나오는

 연설이다.

 

"여러분은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운명 속에서 가장

용기 있는 사람입니다.

 

불구의 몸으로

 못할 것 없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 굳건한 용기와 성실로 건강한

사람이 부러워할 만큼 잘 사는, 문자

그대로의 자활촌을 만듭시다."

 

1972.05. ...........1972.09.06, ...

1972.10.08, ...........1973.03.15, ......

1973.10.02, ......1974.07....

 

육영수 여사의

한센병 환자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끝 없이 이어졌다.

 

한센병

 환자들은 서서히

 달라졌다.

 

돼지는 엄청난

숫자로 불었고 더불어

소득도 늘어갔다.

 

더러는 닭도 키웠다.

 닭은 고기와 달걀을 생산했다.

주머니에 돈도 생겼다. 돈이

돌아가니 생기가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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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치된

사람도 생겼다.

그들은 사회로

복귀했다.


그러나 1

974.08.15 육영수 여사님 서거.

이듬해 1975.03.27 전남 나주군

노안면 유송리.

 

현애원 음성나환자촌

주민들이 돈을 모았다. 당시로는

 거금 115천원이 모였다.  

 

그들은 육영수 여사

추모비를 건립하고 제막식을

거행한 후, 그 내용과 사진을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냈다.

 

비문에는 이렇게 썼다.

"고 육영수 여사님의 크신 사랑 앞에....

사랑의 등불로 우리에게 어둔 길을 밝혀주시던

 고 육영수 여사님은 유명을 달리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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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천병(天病)을 겪고도

햇빛보다는 그늘에서 삶을 영위하는

현애원에까지 자애로운 선물과

희망의 씨앗을 주셨으니   

 

우리는

그이로 하여금 자활과

 애국애족을 배웠으며 사랑의

 정신을 일깨웠습니다.

 

두 차례나

벽지인 이곳을 찾아오시어

남이 꺼려하는 손을 어루만지시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기에

 

우리는 그이가

뿌리신 거룩한 씨앗을

키우려 합니다.

 

생존시에 은덕비를

 세우려던 것이 추모비로 바뀌어진 것을

참으로 가슴 아프게 여기면서 

 

조그만 정성을

 새겨 고 육영수 여사님의

 명복을 삼가 비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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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이들이 스스

자립하여 이런 돈을 모으고 추모비까지

 세워 줄 줄은 몰랐다.

 

어디

한센병 환자들 뿐이랴.

이런 숨은 일화는 셀 수도

 없이 많았다.

 

육영수 여사는

누구도 모르게 도왔지만

그 도움은 일회성이 아니라

 

도움 받는 이가

스스로 일어나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왔다.

 

자립한 그들은

 대부분 이제 남을 도울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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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운 것은 앉은뱅이가

평생 어려운 생활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렀다.

오늘 2016년 8월 15일,

국립현충원....

 

대한민국 박사모.

 

오늘 우리는

우리가 못내 그리워

 하던 육영수 여사님의 음성을

들었다.그 사랑의 음성을.

 

2016.08.15

 

대한민국 박사모

중앙회장 정광용